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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오르네

<설강화>는 무엇이 문제일까?

by pura.vida 2021.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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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설강화>가 역사왜곡과 민주화 폄훼논란으로 온라인이 연일 뜨겁다. 배우 정해인과 걸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지수가 출연하고 유현미 작가와 조현탁 PD가 극본과 연출을 맡은 이 드라마는 현재 방영 중지를 요청하는 국민청원이 30만명을 넘어섰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의 경향일보 칼럼이 이번 사건을 요목조목 자세히 요약해 놓았기에 몇부분 발췌해본다.

<설강화> 논란을 거칠게 요약하면 민주화운동 폄훼(역사 왜곡)와 군부 미화다. 드라마의 시공간적 배경은 1987년 서울, 대선 정국이다. 남파공작원 임수호(정해인)는 안기부에 쫓기다가 피투성이가 되어 여대 기숙사에 뛰어든다. 임수호를 운동권 학생으로 오해한 은영로(지수)가 그를 숨겨주면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는데…. 당시 안기부가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들에게 간첩 누명을 씌워 잡아들였고, 국가폭력 희생자가 실존하는 현실에서 이러한 스토리는 심각한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드라마는 허구이고, 창작물에는 표현의 자유가 있으며, 지금껏 무수한 영화와 드라마가 역사를 기반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그런데 유독 <설강화>가 논란인 이유는 이 드라마가 교묘하게 선을 흐리고 정교하게 악의적이기 때문이다.

<설강화>는 현실의 많은 맥락을 차용하고, 가치 판단을 애매하게 뒤섞고, 권력자의 논리가 진실인 세계관을 만들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여자 주인공 영로의 원래 이름은 ‘영초’였다. 실존하는 민주화운동가 천영초의 이름과 같다. 굳이, 굳~이.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지우려는 시도가 아니냐는 비판이 일자 수정되었지만, 현실 기반의 허구를 다루는 제작진의 감각을 의심하게 되는 부분이다. 영초가 다니는 호수여대는 당시 민주화운동이 한창이었던 이화여대가 모델인데, 학교 기숙사는 순수하고 고귀한 여대생들이 머무는 낭만적인 공간으로 그려진다. 임수호가 베를린 출신 명문대 대학원생 신분을 쓴다는 설정은 ‘동백림 간첩조작 사건’, 임수호가 접근하고 교류하는 야당 총재 한이섭 역할 또한 당시 야당 소속이었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 이렇게 <설강화>는 현실의 소재를 가져오면서도, 모든 것은 드라마라며 적극적으로 탈정치화한다.

임수호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운동권 학생들에 대한 탄압이 실존하기 때문이다. 영로는 오빠가 데모하다가 잡혀갔다며, 그 기억 때문에 번번이 임수호를 돕는다. 그런데 진짜 간첩을, 그것도 학생으로 위장시켜서 심는다? <설강화>는 이렇게 말하는 셈이다. “운동권 학생 중에는 (실제로) 위장한 간첩이 있었다. 임수호의 고난과 운동권 학생의 고난은 ‘멋모르는’ 선량한 시민이 구별하기 힘들다. 안기부는 이를 찾아낼 의무가 있으며 추적은 정당하다.”


중략


‘그럴 만했다’는 당위가 주어지는 순간 가해와 폭력은 슬그머니 논쟁의 영역으로 이동한다. ‘큰일을 하다 보면 그럴 수 있는’ 절차상 잘못 정도로 심각성이 축소된다. <설강화> 시놉시스 공개 당시 큰 비판을 받았던 이유 중 하나는 또 다른 남자 주인공이자 안기부 요원인 이강무(장승조)를 ‘대쪽 같다’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조작과 폭력을 일삼는 기관에서 높은 위치에 오른 이가 ‘대쪽’ 같다는 것은 곧 그 기관의 규범에 충실하다는 뜻이다. 온갖 끔찍한 고문 기술을 개발하고 일삼았던 이근안이 “당시 시대 상황에선 고문이 애국이었다”고 말한 것과 통하는 지점이다. JTBC는 그가 간첩을 만들어내는 안기부에 환멸을 느껴 해외 파트에 간 것을 대쪽 같다고 표현했다고 하지만, 글쎄? 동백림 사건이 있었던 나라에서 안기부 직원의 근무처는 조작의 피해자가 국내에 있냐 외국에 있냐를 가를 뿐이다.

원문보기 https://news.v.daum.net/v/20211224162150906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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